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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갑상선암 환자 기록_(3) 수용과 마인드컨트롤 본문

Bad luck

남자 갑상선암 환자 기록_(3) 수용과 마인드컨트롤

글럭글럭 2024. 5. 22. 10:53

231225

내 생에 가장 길었던 2주가 지났다.

부모님께는 말씀드리기 전이라 평소와 같이 대했고 회사에서는 평소보다 더 밝게 지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더 어둡게 지냈다.

 

평소에 주 5회 이상은 하던 운동도 가지 않게 되었고

저녁식사도 맛있게 먹는다는 느낌보다는 의무적으로 채웠다.

물론 건강하게 먹지도 않았고 정키하게 먹었다.

 

몸은 무거워졌고 면역력이 낮아져 컨디션은 나날이 악화되었다.

 

"왜 하필 나야.."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 도대체.."

"X발, 열심히 살아서 뭐해.."

나를 지배한 생각들이다.

 

멍하니 유튜브로 갑상선암 브이로그를 틀었다.

나와 같은 처지인 사람들로부터 위로를 받고 싶었던 탓이다.

 

그 누구도 우울하게 지내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알고리즘으로 자동재생된 더 심각한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도 모두 웃으며 지내고 있었다.

 

순간 스스로가 너무 청승맞았다. 스스로가 나 자신을 비련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있었다.

암이라는 것이 경중을 따질 수는 없지만

갑상선암은 완치율이 97% 가까이되는 생존율 높은 암이었고

평생 약만 먹을 뿐, 일상에는 전혀 지장이 없는 암이었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암에 왜 걸렸을까" 보다 "암 수술 이후의 삶"을 더 많이 생각한 건.

 

평소의 나는 욕심도 많고 여유도 없는 성격이었다.

그 누구의 실수에도 관대하지 않았고 주변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핑계로 주위를 살펴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런 일을 겪게 된 것은

조금 욕심을 내려놓고 인생을 천천히 가라는 누군가(하늘, 몸, 어쩌구 등)의 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불교 신자다.)

 

이번 기회를 통해 더 건강한 삶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역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240101

새해가 밝았다.

나의 2023년은 희로애락이 가득했다. 

새로운 직장에서의 경험, 새로운 사람들과의 추억, 새로운,,,병(?),,,뭐 어쨌든

많은 것들이 새로웠다.

 

다행이게도 지인을 통해 서울아산병원 정기욱 교수님께 수술일정을 잡았고

수술을 잘 견디고 수술 이후 원활하게 회복할 수 있도록 다시 운동도 시작했다.

그동안 신경쓰지 못했던 주변사람들에게 눈과 귀를 기울였고

그들과 더 많이 만나고 추억을 쌓았다.

 

나를 잠식했던 부정적인 생각들이 서서히 희미해졌다.

혼자 지내는 시간을 최소화했고 밖에서 웃고 떠들었다.

 

다만,

수술에 대한 불안함과 공포는 내 잠재의식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던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직 부모님께 이 사실을 말하지 못한 진실에 대한 불편함이

24년 초, 한 겨울의 입김에 함께 서렸다.

 

평생 잊지 못할 한 해의 끝과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