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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uck

다른 사람들 대할 땐, 연애편지 쓰듯 했다. 그런데 백만번 고마운 은인한테는 낙서장 대하듯 했다. 퇴근 후 온전히 집에서 쉬고자 마음 먹은날, 그런날은 밖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몸도 마음도 허기가 져서 밥을 많이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다. 그런 날에 그녀는 내 헛헛함을 저 먼 타지에서도 느끼는지 어김 없이 전화하여 시시콜콜한 질문을 하기도 했다. 그녀의 전화를 그동안 내가 얼마나 대충 받아왔는지, 하나씩 떠오르니까 마음이 좀 무거워지더라. "아들 뭐해?"라는 물음에 "응 그냥, 집." 하고 건성으로 답하거나, 바빠서 정신없다는 핑계로 "나중에 전화할게" 하며 얼른 끊으려 했던 적이 많았다. 그때는 그냥 일상이 바빠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너무 무심했던 것 같다. 그녀의 목소리..

단 한마디만 솔직하게 내 생각을 말해도 그 즉시 관계가 끝장나버릴 그런 사람이 있다. 자꾸 나보고 자기랑 비슷하다는데내 보기에 우린 조금도 비슷하지 않다. 무엇보다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난 너 같은 애 잘 알아, 라는 말을그렇게 쉽게 하지 않는다. 누가 누굴 안다는 말이얼마나 무례가 될 수 있는지,그런 말은 얼마나 깊고 신중한 생각 끝에 해도 해야 하는지아는 나와 모르는 그가 같은 부류가 될 수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간혹 얼굴 한번 보고 가끔 안부나 주고받는 사이에 굳이 정색하며 아니, 우리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에요당신은 나를 모릅니다, 라고 하는 것도 오바인 것 같아나는 그냥 당신을, 이 관계를 내버려 둘 뿐이다. 이런 식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 도리어 솔직하지 못하고 그래서 어쩌면 당신보다내..

지긋지긋한 병마와 싸우는 과정에서가장 보통의 하루가 주는 의미는 비교적으로 훨씬 크게 소중히 다가온다. 격리기간 동안 가장 좋아하는 로와이드 치즈케이크, 원산만두 배달도 받고기대치 않은 김영모 타르트도 받았다. 그뿐이겠느냐, 스시우미 잠실점에서 다섯달만에 술도 마시고 좋은 오마카세도 먹었다. 가장 보통의 하루의 감사함을몸소 체감할 수 있는 24년의 초여름이다.

지하철 개찰구에서 카드를 찍고 나올 때면 때로는 빨간 숫자로 100원, 200원의 추가 요금이 표기된다.그 아래에는 한 달간 들인 교통비가 함께 뜨는데,덕분에 날짜 감각에 다소 둔한 나로서는 지난 며칠간 얼마나 바빴는지 혹은 단조로웠는지 상기시켜주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그리고 이는, 개찰구가 가까워지면지갑을 꺼내들고 카드를 찍을 순간을 기다리고 있을 때바로 앞사람의 그간 여정을 엿보는 데에도꽤 유용하다.삑, 그가 카드를 댈 때 추가 요금이 500원 붙으면 '아이코, 먼길 오셨네요. 고생하셨겠다.'실로 그의 얼굴은 아침부터 꽤 지쳐있기도 하다.그리고 다시 삑, 그녀가 카드를 댈 때4월의 반토막이 훌쩍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만 원도 채 되지 않는 금액만이 쌓여있으면'오랜만에 외출이신가 봐요. 누구를 만나러 가..

긴 비행을 할 때면, 사진첩을 정리한다는 이유로 만장이 넘는 앨범을지루할 틈도 없이 손가락을 놀리며 들여다보곤 한다. 누군가의 말을 인용하자면'습기를 머금다 못해 검푸르게 곰팡이가 피어버린' 사진들을마음으로부터 주저 없이 찢어버리기도 한다.가볍게 삭제 버튼을 누르면 보이지 않는 휴지통으로 재빠르게 버려진다.참 간편한 세상. 그땐 그랬지. 우린 이랬고,,, 나는 왜 저랬을까. 매 순간이 빛났던 우리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무수히 되뇌었다. 세상은 이렇게 보아도 예쁘고 저렇게 보아도 예쁘니예쁜 것을 예쁘다고 말할 수 있는 눈과 귀와 입을 갖게 되기를, 사랑하는 마음에 고맙다고 말하고 미안한 마음에 입을 맞출 수 있기를, 행복을 바라지 않았던 적은 없었으니 불행마저도 기꺼이 담아낼 수 있는 글과 그림을 더욱..

평소 지하철보다 버스를 선호해서 도로사정을 막론하고 버스를 탑승했다가약속에 늦은 적이 적지 않으면서도 난 버스를 타는 것을 좋아한다. 버스를 타고 창 밖을 보고 있노라면, 창문을 열고 한숨을 푹푹 쉬며 담배를 뻑뻑 피우는 아저씨,언성을 높이며 길 한복판에서 싸우고 있는 젊은 커플,신호를 기다리며 다음 주문을 확인하고 악셀을 당길 준비를 하는 배달부,주머니에 손을 꽂고 추위에 발을 동동거리며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여성,본인 몸만한 더플백을 둘러메고 셰이커를 흔들며 헬스장으로 향하는 남성.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볼 수 있다.'이게 내가 생각하는 버스의 묘미다. 평소 오지랖이 넓지 않지만, 버스만 타면 각자의 사연이 막연하게 궁금하다. 새벽에 버스를 타고 운동갈 때는"저 아주머니는 무슨 사연을 갖고 지금 버스..

박명수는 말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너무 늦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시작해라." 당시 방송을 볼 땐, 마냥 궤변 같이 들렸는데 지금 가만 생각해 보면 이보다 강한 동기부여의 말이 있을까. 내 주변의 누군가는 말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그래서 가만히 있지 않으려 한다. 이 공간에서 포스팅을 시작하는 이유는 누군가에겐 광고로 수익을 창출하는 목적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이런저런 협찬이 목적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말하지 못하는 고민과 비밀을 익명의 다수에게 털어놓는 목적일 수도 있겠다. 나 역시, 목적을 갖고 컴퓨터를 켰지만 글의 시작을 여는 말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목적성을 버리기로 했다. 뚜렷한 목적은 분명 무언가를 지속하기에 큰 힘이 된다고들 한다. 하지만, 작..